모나미 153 연대기

한국 어느 집에나 한 자루씩 있는 국민볼펜인 모나미 153 볼펜에 관한 책이다. 모나미 153 볼펜은 익숙하고 저렴한 문구용품인 동시에, 그 생산과 유통 과정에서부터 한국의 산업화와 압축 성장의 시대를 함께해 온 역사적 사물이기도 하다. 이 책은 모나미 153 볼펜에 관련된 일상의 에피소드들을 한국 근현대사의 실제 사건들과 뒤섞어 볼펜의 역사에 접목시킨, 한 편의 이상한 소설이다.

『모나미 153 연대기』는 2010년 미디어버스에서 1쇄 발행 후 몇 달 만에 품절되었다가, 9년 만에 개정판으로 다시 선보이게 되었다. 이번 개정판은 디자인과 본문 레이아웃을 다듬고, 부분적으로 이야기를 늘려 쓰고 보강했다.



서지정보

제목: 모나미 153 연대기 Monami 153 Chronicles

지은이: 김영글

디자인 : 양승현

판형 : 110X140mm 쪽수 : 153쪽

발행일: 개정판 1쇄 2019년 11월 14일

ISBN: 979-11-968501-0-4 정가 : 12,000원

차례

볼펜을 돌리며(서문) I. 3월의 별들(프롤로그) II. 거래 III. 이름의 법칙 IV. 볼펜을 이루고 있는 것들 V. 어휘들 VI. 모나미 153 볼펜은 왜 단종되었나? VII. 영원에 대하여(에필로그)




밑줄긋기

P. 1 나는 사물에 대해 애기하기를 좋아한다. 그러나 긴 수다가 끝나고 나면 그것이 전혀 사물에 대한 얘기가 아니었음을 깨닫는다. 사물은 결코 사물로서 온전히 머무르는 법이 없다.


P. 9 그러나 그는 알고 있었다. 역사적 약자에게 최후의 무기는 기억이라는 사실을.


P. 17 송삼석 씨는 볼펜의 원리를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. 우치다요코사의 직원은 혁명이란 단어를 써놓고 겸연쩍어했지만, 송삼석 씨는 실제로 그 사물에서 희미한 혁명의 냄새를 맡을 수가 있었다.


P. 67 낡은 나무책상을 갑자기 긴장 감도는 적막의 섬, 가파르고 애틋한 소인국의 영토로 만드는 게임에는 세 종류가 있다. 지우개 따먹기. 알까기. 그리고 볼펜 밀어내기. 볼펜 밀어내기는 지우개 따먹기보다는 경쾌하고 알까기보다는 우아하다.


P. 95 모나미 볼펜의 입장에서는 그럴 법도 한 것이, 제 몸으로 한 번 써낸 끔찍한 이야기를 수십 년 동안 반복해서 다시 쓰는 환각에 사로잡히는 것이야말로 거부하고 싶은 고통 중의 고통이었던 것이다. 그것은 한낱 문구용품에게 감당을 요구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일이 아닐까?


P. 108 한 가지만 두고두고 기억하자. 지워지지 않는다고 해서 잉크가 언제나 진실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. 그것이 진실인 한, 우리는 늘 그것을 믿을 수 없는 허공 위에다 쓰고 있는 것이다.


P. 141 이윽고 볼펜 같은 사물을 곁에 두기를 꺼리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. 모나미 153 볼펜이야말로 도청장치를 숨길 수 있는 최고의 공간으로 판명되었다. 그것은 어느 집, 어느 기관에나 한 두 자루씩 있고, 늘 우리 주변에서 아무렇지 않게 굴러다니는 물건이면서, 우리가 밤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, 전화 통화를 하면서 무엇을 받아쓰는지, 소설의 어느 구절에 밑줄을 긋는지, 누구의 이름을 그토록 잊지 못해 메모지에 수십 전 되풀이해 적고 있는지, 모든 것을 알려주는 스파이적 사물이 아닌가?



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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